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순신의 나라 (문단 편집) === 왕실 === * '''[[선조(조선)|선조]]''' 본작에선 선조가 은근히 열등감 투성이 & [[찌질이]]에다 귀가 얆고 앞날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도량이 좁은 임금으로 나온다. '''머리는 좋은데 그 머리를 자기를 위해서만 쓰는''' 인물.[* 이는 실제 역사에서도 비슷하다. 어차피 악역이므로 성격을 바꿀 필요도 없다.] 이순신이 거병하자 다른 장수들도 이에 따를 것을 생각했는지 권력을 동원해 애꿎은 사람들을 몰아넣다가 유형이 단박에 전향하는 등 일을 엉망으로 만들더니[* 육지에 있으면서 이순신의 거병에 찬성하지도 않은 [[권준]]과 [[이순신(무의공)|입부 이순신]]은 초장부터 조지더니 정작 [[교동도|교동]]현감 [[https://ko.wikipedia.org/wiki/홍가신|홍가신]]은 이순신의 사돈인데도 건들지도 않았다가 반정군의 한양 습격을 허용한다. 여기에 권준과 입부 이순신의 추포로 경기방어사와 포도대장 자리도 공석인 채로 한양방어전 돌입. 이뭐병....] 이순신 일행이 한양 가까이로 나아가자 혹시 이순신과 접촉해 새 왕이 되려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모든 직계 왕족들을 인질로 데리고 [[함흥]]으로 도망치더니 급기야는 [[정원군]]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누르하치]]가 이끄는 여진 병사들을 끌어들이더니만 되려 그들한테 참살당한다. 이순신의 존재를 탐탁치 않으면서도 이순신에 대해 호의를 가진 명군의 장수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정도로 이순신에 대한 열등감이 크다. 이순신이 거병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양]] 인근에 세워진 명군 진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할 정도로 명군이 이 사태에 개입하지 못하게 노력해 왔지만 선조의 열등심을 잘 알고 있었던 명군 사신의 논파에 반박하지도 못했다. 여진족을 상대해야 한다는 북방의 실정은 안중에도 없이 5만 북병 중 왜 4천밖에 못 모아오냐며 함경감사를 닦달하는 등 전형적인 암 걸리는 높으신 분. 그래도 최후를 맞을 때는 나름 조선의 왕답게 여진족 군사들에게 당당히 맞서다 살해당했다. 이순신이 유해를 수습하고 실제 역사처럼 [[선종#s-1|선종]]이라는 [[묘호]]를 올렸다.[* 선조의 원래 묘호는 선종이었다. 후에 임진왜란 때의 공이 있다 해서 선조로 바뀌었을 뿐.] [[임진왜란]] 때 임금이 자신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친 일로 인해 민초들한테 단단히 찍힌 터라 선조의 시신 운구 행렬을 구경하면서 "도망꾼 임금이 잘 죽었다", "아예 [[만주|야인 땅]]으로 가지 그랬냐", "조금만 더 살았으면 [[여진족|야인들]]이 쳐들어와 제주도 피난도 가보지 않았겠냐"며 백성들이 비웃을 정도로 선조에 대한 인망과 충성심이 거의 없어졌다. * '''[[임해군]]''' 선조의 서장자이며 광해군의 동복형. 포악한 성격 때문에 동생 광해군에게 세자 자리를 넘겨주고, 임란 때에는 순화군과 함께 왜군에게 붙잡혔던 굴욕을 맛봐 하루하루 술로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포로생활로 묘한 동질감이 생긴 이복동생 순화군이 자신이 왕이 되도록 밀어주면 보답하겠다는 말에 손을 잡았으나 순화군이 비명횡사하자 이후로는 명색이 왕실의 장자가 피난길에서조차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초헌 위에서 술을 찾으며 추태를 부리는 인간 쓰레기로 전락한다.[* 이것도 사실 실제와 비슷하다. 포로로 잡혔던 것도 백성들을 위무해야 하는 처지에 이것저것 갑질만 벌이다가 일어난 일이기 때문.] 결국 정원군이 불러온 여진 군사들이 조선 왕족들을 멸족시킬 때 함께 죽었다. * '''[[광해군]]''' 본작의 진정한 [[대인배]]. 이순신의 거병에 대해 그 정당성을 이해하고, 최대한 희생없이 이순신과 협상하여 사태를 마무리지으려 하나 아버지 선조의 의심병 때문에 이순신과의 접촉 시도가 무산되고 선조에 이끌려 [[함흥]]으로 파천한다. 선조와 정원군이 끌어들인 여진족 군사들의 만행에 분개하고, 차라리 이순신이 왕이 되는 게 하늘의 [[천명]]임을 깨달아 '''이순신에게 [[선양]]한다는 내용의 교서'''를 몰래 작성하나 그 직후 여진족 군사들이 아버지 선조를 비롯한 정원군 외의 모든 조선 직계 왕족들을 살해할 때 광해군 역시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나 안위와 임승조가 구원군을 이끌고 온 덕분에 잠시 목숨을 연장하여 몇 시간 정도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재위했고, 이순신에게 선양한다는 교서를 함흥부윤 문향식을 통해 읽게 함으로서 '''이순신의 새 왕조 개창에 정당성을 실어준 후 숨을 거두었다.''' 이순신은 [[애종]](哀宗)이라는 묘호를 올리고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뤘다.[* 사실상 즉위를 못했기에 [[묘호]]를 올려야 하는지 논의가 있었으나 그가 '''왕으로써''' 이순신에게 [[선양]]을 해야 신왕조에 정당성과 명분이 생기므로 결국 공식적인 마지막 왕으로 인정되었다. [[헌종]]으로 하자는 이들도 있었으나, 조선의 마지막 왕이라는 점을 가련히 여겨 애종으로 하였다.] * '''[[순화군]]''' 이순신이 거병했다는 소식을 알음알음 전해듣고는 몰래 [[임해군]]을 만나 (정원군이 몰래 엿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선조 몰래 이순신과 접촉해서 '''[[임해군|형]]은 글렀으니''' 자신이 왕이 될 수 있게 협력해야 한다는 의사를 내뱉고, 선조가 이끄는 왕족 일행이 [[파주]]에 잠시 머무른 틈을 타 안전한 도주로를 찾아야 한다는 거짓말을 치고는 장인어른과 처조부만 따로 데리고 임진강에 정박해서 선조를 붙잡기 위해 감시 중이던 안위를 만났지만 순화군의 막장스런 태도에 빡돈 안위가 직접 [[활]]로 쏴 죽인다. [[화살]]에 목을 꿰뚫린 순화군의 시체는 임진강 물 속에 고꾸라졌고 이 광경을 본 순화군의 남은 일행은 놀라서 파주로 돌아가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정작 이 사건 당시의 안위는 순화군의 얼굴을 몰랐던 데다가 순화군을 사칭한 막장 인간으로 판단했으나 후에 선전관 출신인 유형과의 대화 중간에 임진강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없이 내뱉자 뭔가를 느낀 유형의 재촉에 임진강을 뒤져 시체를 건졌고, 시체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순화군을 알아본 유형의 표정을 보고서야 엄청난 실수를 했음을 파악하고 경악했다. 다만 이 막장스러운 인간이 이순신을 만나 깽판을 부렸으면 이순신이 얼마나 골치를 썩이게 되었을 지 생각하면, 안위가 이순신을 구원한 셈이다. 대놓고 깽판은 안 치더라도 일단 왕족이 귀순한 이상 이걸 함부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조선팔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망나니를 왕으로 앉힐 수도 없고. 게다가 선조 일행은 순화군이 오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기던 찰나에 순화군이 수행내관을 베는 것을 보고 도망친 수행원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듣고 곧바로 파주를 떴으니 어차피 다 박살난 우수군 몇백명 데리고 도주로 차단과 서북병 견제 임무를 동시에 맡고 있던 안위로서는 순화군을 잡으나 마나였을 것이다. * '''[[정원군]]''' 본작의 진정한 [[발암물질]]. 형들인 임해군과 광해군을 몰아내고 세자가 될 야심에 차 있다가 이순신의 반정으로 인해 왕실이 함흥으로 파천하게 되자 아버지 선조가 광해군에 대해 가진 의심을 이용해[* 그 전에 정릉동행궁에서는 코를 고는 척하면서 순화군과 임해군의 대화를 엿듣고, 두 사람에 대한 의심을 선조에게 주입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누르하치의 건주여진 군사를 [[용병]]으로 쓰자는 의견을 내고 직접 누르하치를 만나러 간다. 회견장에서 [[술]]에 취한 나머지 누르하치의 야망에 대해 찬동하면서 '''"내가 조선 왕이 된다면 건주여진과 연합하여 명나라를 함께 공격하겠다"'''는 발언을 하여 누르하치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정작 그런 패기 이후에는 별 다른 전략적·군사적 식견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패륵 추잉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호구(유행어)|호구]] 노릇만.... 누르하치는 정원군의 어리석음을 간파하고 정원군을 조선 왕으로 삼아 조선을 지배하려는 계획 하에 선조와 광해군을 비롯하여 [[인조|정원군의 아들]]들을 제외한 '''모든 조선 왕실 가족들을 살해'''한다. 결말에는 누르하치를 따라 건주여진으로 가서 [[꼭두각시]]인 [[괴뢰 국가|자칭 조선 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르하치 입장에서 함흥 전투 이후 이순신의 즉위까지 약 반년여 기간 동안 그를 괴뢰 왕으로 세우고 소식을 퍼뜨리면 곧바로 조선 내부를 뒤흔들 수 있음에도 그런 모습이 안 보이는 걸 봐서는 [[끔살|다른 결말]]에 이른 것일 지도. ~~여진애들도 데려와 놓고 보니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겠지~~][*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앞세우기엔 왕과 왕족을 몰살시킨 여진족에게 옹립된 처지라 부족한 게 많은 반면, 이순신은 광해군에게 선양받고 명나라의 책봉까지 받았다. 따라서 정원군은 조선 왕으로 사대부들이 충성을 바치기엔 명분이 앞선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윤두수 일파는 아직까지도 '''"나으 정원군 마마께서는 그러셨을 리 없다능 모두 이순신 역도들의 더러운 거짓말이라능 전하와 왕실은 이순신 역도들이 죽인 거라능!"'''이라며 [[정신승리]] 중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여진족들을 뚫고 가서 보필해 온다는 방법도 없다~~] * '''[[의인왕후]]''' 중전. 현실과 마찬가지로 와병 중이며 후반에 종실과 함께 [[혜산]]으로 피신하다가 정원군과 결탁한 여진족에게 살해당한다. * '''[[인빈 김씨]]''' 소설에서 선조 부자의 시신을 수습하던 중 '어쩌면 정원군이 빼돌리지 않았을까?'라는 언급만 나온다. * '''[[당은군(1562)|당은군]]''' 선조의 형인 [[하원군]] 이정의 아들. 인사불성이 되어 정신 못 차리는 임해군을 대신해 혜산[* 그런데 작중에서 피난가는 곳이 혜산이랬다가 [[회령]]이랬다가 오락가락 한다.]으로 피난을 떠나는 종실과 내명부의 행렬을 이끌다가 여진족에게 죽는다. 피난행렬 중 성인 남성들 중에서는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으나 결국 그가 한 일은 정원군 소생 왕자들의 신원을 확인해 주고 그 외 조카들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본 뒤 자신도 칼에 맞는 것 뿐이었다. * '''[[https://ko.wikipedia.org/wiki/영제군|영제군]]''' 당은군의 동생, [[선조(조선)|숙부]]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가 당은군과 함께 피난 행렬에 가담한다. 30세가 넘었으면서 형에게 계속 불평을 하지만, 역시 여진족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 * '''영창정 이격''' 선조의 오촌 조카. 비교적 관계가 멀어서 서울에 두고 갔다.[* 말이 왕족이지, 5촌 정도면 명예직 외에는 관직도 못 나가며 봉록이나 받아먹는 정도.] 윤두수에 의해 선조와 광해군의 후임 국왕으로 추대되었고, 입궁한 이순신과 만나서 [[허생전]]을 연상케 하는 문답을 하는데, 결국 이순신이 질문한 개혁안에 대해서는 별 다른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역적이다 역적 빼애애액'''만 부르짖다가[* 사대부와 지주들에게 세금을 걷고 공납을 철폐해 수미법을 도입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는데, 하다 못해 온건하게 가겠다는 대답조차 못 했다. ~~대신들은 분명히 총명하다며 칭송했는데? 윤가놈 선구안 수준 봐라~~] 그대로 이순신에게 압도당해 물러나고 만다. 이순신의 새 왕조가 개창한 후에는 조선 왕실의 제사를 잇게 된다.[* 조선에서도 [[고려]]를 멸망시킨 후 왕씨 학살을 벌이긴 했지만 [[공양군]]의 동생과 그 일가족은 살려두어 고려 왕조의 제사를 잇게 한 바가 있다.] * '''[[https://ko.wikipedia.org/wiki/오강군|오강군]] 이건''' 중종의 손자로 해안군 이희의 아들이며 윤두수 일파의 회의 중에 다음 임금 후보로 이름만 언급된다. 나이가 40줄인데 제대로 군왕교육을 못 받았다는 이유로 기각. * '''홍산군'''(洪山君) '''이득'''(李得) [[세종(조선)|세종]]의 4대손. 전란 동안 몇 번 직접 싸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작금의 문제와 그로 인한 변란을 잘 이해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이순신과 협력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미 왕을 세운 권신 정도의 위치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순신은[* 설령 초반에는 권신이 되어 정책을 추진한다 해도 언젠가 왕의 주변에 당여가 모여 충돌할 것이 뻔하기 때문. 이순신의 개혁안은 사대부와 지주에 대한 군역 및 조세 부과를 골자로 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권력으로는 추진이 불가능했다. 실제로 왕이 개혁파를 밀어줄 때는 어느 정도 일이 되는 것 같다가 왕의 죽음이나 정계개편 등으로 지원이 끊기자 마자 중단을 넘어서서 아예 롤백되는 사례는 동서고금에 쌔고 쌨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애매한 답변으로 왕실 내부에 분란을 조장하는 용도로 써먹는다. 이후 영창정을 옹립하려는 윤두수 일파에 의해 역적인 이순신과 결탁하려 한 것에 대한 경고 겸 이순신을 암살하기 위한 [[성동격서]]의 일환으로 [[암살]]당한다. [[흥안군]], [[이지#s-10|원손]], 정원군과 당은군의 아들들이 포함된 다른 직계 왕족들은 이름이나 칭호만 언급되며 정원군의 아들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살해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